우리는 왜 살아야하는가
2025-03-31
우리는 왜 살아야하는가.
떠올릴수록 우울한 내용이긴 하나 멈출 수 없는 흐름린 것 처럼 태어나서부터 이어오던 질문이다. 오랫동안 중용의 원리에 따라 행복하기 위해 산다는 답을 가슴에 품은채 나날을 보내왔다. 그래. 행복하기 위해 살아가는거겠지. 그러나 '행복' 조차 정의하지 못하는 나에게 행복하기위해 산다는 것은 답이 되지 못했다. 그건 마치 감자가 뭔지 모르는 사람이 감자전을 좋아한다는 얘기와 같았다. 본질을 꿰뚫을수록 허무함이 다가왔다. 결국 내가 증명할 수 있는 선에 설명은 '죽지 못해 산다.' '사는게 자연스럽기 때문에 산다.' 는 무기력한 문장 뿐이었기 때문이다. 이 허무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선 더 깊은 사유함이 필요하다. 과감히 인간의 성스러움을 포기하는데에서 이 극복은 시작한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유일하지도 않고 개개인을 명확히 구분할수도 없다. 신기하게도 이를 인정하면 우리가 살아야할 이유가 어렴풋히 보인다. 개개인의 독립성이 인정되지 않는 사회 속에서 인간은 곧 집단으로 정의된다. 비슷한 사고, 비슷한 성질을 가진 인간들은 그 전체로서 의미를 가지며 존재의 목표가 그 존재의 유지처럼 보인다. 칸트의 정언명령같이 사회가 존속되지 못하는 구조의 인간이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우리의 목표는 길게 보았을 때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서이다. 돌고 돌아 이 대답을 마련한 나는 이제 죽음이 두렵지 않다. 내가 곧 죽을 때에는 죽는게 자연스러울 때이겠지. 그저 전체주의적인 안정과 발전을 위해 힘쓰는게 내가, 곧 개개인이 할 일이다. 이제 '죽지 못해 산다' 는 문장은 더이상 무기력하지 않다. 두려움을 떨쳐내고 단단해지기 위한 강인한 문장일 뿐이다.